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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분기별로 회고록을 적어왔지만, 공개 게시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적기 전에 지난 회고록들을 살펴보니, 온갖 내용들이 다 들어가있어서 즐거웠던 일을 회상하기도, 아쉬웠던 일을 돌이켜보기도 좋았다. TMI를 빼고 핵심만 간략히 적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면 나중에 봤을 때 재미 없을 것 같다. 일단 재밌어야 하니까 올해 회고록도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본다.

23년에 있었던 일

올해의 메인 컨텐츠는 42서울 공통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42서울은 프로젝트 기반 동료학습으로 CS지식을 학습할 수 있는 곳이다. 20년 9월 2기 본과정 교육생이 된 뒤로,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약 500일만에 공통과정을 마쳤다. CS지식을 거의 다루지 않는 본 전공이 맘에 들지 않아서, 재밌어보여서 등의 이유로 도전 했었는데, 생각보다 더 알찼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공부만 하는데 지원금까지 챙겨주니 대학생에겐 둘도 없는 꿀맛 대외활동이 아닐까?

다른 부트캠프와는 다르게 굉장히 긴 기간동안 진행하며, 배우는 내용도 사뭇 다르다. 바로 취업하기 위한 일련의 기술들이 아닌, 컴퓨터 공학 전공 지식을 프로젝트에 녹여 배운다. 과제 이름만 보고는 바로 유추하기 쉽지 않다.(빨리 노션에 정리해놓은 것들 블로그로 옮겨야 하는데…) IPC 만들기, 대화형 쉘 구현하기, 식사하는 철학자 문제, 레이 트레이싱, Irc 서버 구현하기, LEMP 스택 구현하기 등 다양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보고, 만든 것들을 동료들에게 평가 받는 시스템이다. 남에게 내 코드를 설명해야 하는 과정이 필수이기 때문에, 문서화나 소통 등의 소프트 스킬 또한 익힐 수 있다는 게 다른 교육과정 대비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작년에 “공통과정을 8월말까지 돌파한다”는 목표를 세웠었는데, 아쉽게도 이 목표는 지키지 못했다. 마지막 과제인 ft_transcendence를 완성하는데에 2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인데,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기존 과제들과 달리 아예 새로운 스택으로 웹앱을 구현하는 과제였는데, 제대로 된 협업도 해볼 수 있는 기회였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 기술적으로, 인간적으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였다. 아쉬운 점은 내가 학부 병행을 하느라 작업 시간이 팀원들에 비해 적었다는 점과, 문서화도 부족하고 기술 부채가 많이 쌓였다는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니까, 다음 프로젝트는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올해는 이런 과목들을 들었다. 1년동안 조별과제가 너무 많아서 쉽지 않았고,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나에겐 항상 재미가 1순위인데, 전공과목들 보다 42서울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재밌고 잘 맞는 것 같았다. 대학 입학때부터 진로 고민을 해왔었는데, 데이터 분석 쪽 흥미가 이렇게 팍 식어버릴 줄은 몰랐다. 여러 텀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오히려 개발이 데이터 분석보다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학기때 운영체제와 웹서비스설계및실습 이라는 과목은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전공 학점도 이미 충분해서 다른 데이터 과목은 수강할 생각이 없었는데, 듣고 싶었던 교양과목을 다 놓쳐가지고 어쩔 수 없이(?) 전공 수업을 더 듣게 되었다. 운영체제 과제로 커널 모듈도 짜보고, 시스템 콜 하이재킹도 해보고, 어셈블리 파싱해서 최적화하는 것도 해보고… 혼자 공부했으면 절대 안해봤을 것들을 많이 해본 것 같다. 정말 힘들었지만, 하나 하나 해보면서 얻어가는게 많았던 것 같다.

보통은 전공 여러 개 들으면서 다른 일 잘 안하는데, 올해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일을 엄청나게 벌렸었다. 2학기 초에는 42서울 프로젝트와 병행하느라 바빴고, 학기 중반 넘어가서는 우테코 프리코스와 PCCP, 카카오 인턴 코테, 당근 인턴 서류 접수 등 없던 일을 만들어서 바쁘게 지냈다. 하나하나 다 적기에는 느낀점이 너무 많아서, 노션에 짧게 문서화 시켜놨다. 뭔가 지금껏 딱히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아도 막상 이력서를 적어보니까 채울 내용이 없다. 코딩 테스트도 꾸준히 공부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험 치니까 아직 멀었다고 느꼈다. 매일 마감에 치여 살았던 것 같은데, 정작 남은 게 없는 듯한 느낌이다.

맞다. 글또 9기가 남았다. “글 쓰는 또라이가 세상을 바꾼다”는 캐치프라이즈를 가진 글쓰기 모임인데, 42서울 마지막 과제를 했었던 좋은 팀원들 중 같이 백엔드를 맡았던 분이 추천해주셔서, 부랴부랴 지원서를 넣었고, 운 좋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막상 블로그까지 옮기려니까 동기부여가 잘 안됐었다. 2주 단위로 글을 제출해야 하는 동기가 있고, 훌륭하신 분들과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인 대외활동 같다.

스스로 부족함을 깨달을 일이 많았던 한 해였지만, 오히려 내가 뭘 더 채워야 할 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더욱 가치있는 한 해 였던 것 같다. 뜬금 없지만 지도교수님의 명언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선택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말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데에 시간을 쏟아라.” 라는 말로 한 학기를 마무리 하셨는데, 투 머치 고민러인 나에게 너무 와닿는 말이었다. 너무 생각을 많이하면 될 것도 꼬인다. 내년에는 주저하지 말고 일단 해보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

24년에는

  • 산학연계 캡스톤 졸업은 해야 하는데 데이터 분석은 하기 싫어서, 분석을 맡을 친구 두 명과 프론트엔드를 맡을 친구 한 명 총 4명으로 팀을 이뤄서 졸업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추천 시스템 + B2B 쇼핑몰 클론을 하게 될 것 같은데, 모쪼록 열심히 해서 자랑할 수 있을만 한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 취준하기 가능할 지 모르겠는데, 졸업 전에 취업하는게 내년 가장 큰 목표이다. 이미 고배를 마신 친구들을 보면서 진짜 미리미리 준비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올해 이것저것 많이 써보려고 했지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준비할지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 책 읽기 & 운동하기 연말연시 단골 다짐 주제인데, 올해를 보내면서 이 두 가지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 많아서 적었다. 하도 영상 매체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점점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느려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문장력이 점점 처참해진다던가, 말할 때 깔끔하게 정리가 잘 안된다던가 하는 단점들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일을 마구 벌리면서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 때가 정말 많았기 때문에, 더 바쁘게 지내기 위해서 운동에 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내가 개발을 좋아하게 된 계기나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보고 정리 해놔야겠다. 자소서 쓸 때도 도움이 되겠지만, 나태해질 때마다 꺼내보면서 스스로 다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없이 또 한 해가 흘렀다. 지금 걷는 이 길은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의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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